“머릿속 풍열을 가을산 바람이 그러하듯이 상큼하게 날려주자. 머리를 맑게 해주는 한약재는 많다”
가을산을 다녀왔다. 시냇물을 징검다리로 건너고, 산으로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빨갛게, 노랗게 물든 단풍을 감상하며, 계곡으로 내려오는 맑은 물소리를 들어본다. 깨끗한 공기를 담은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며 땀을 식혀준다. 아! 이 맑고 깨끗함이여! 시원하고 상쾌함이여!
맑고 청량한 공기 속에서 사물들은 또렷하게 드러난다. 무성하게 장식했던 여름을 보내고, 이제는 내면으로 눈을 돌리니 사물들이 맑아진다. 어지러운 난마처럼 얽혀있던 칡덩굴도 이젠 서리를 맞아 내려앉아, 본래의 목적인 뿌리로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계절을 맞으니 초목들도 선, 후, 좌, 우를 알맞게 정리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 역시 가을산을 다녀오니 복잡하게 얽혀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일들도 정리가 되는 듯하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공기 순환이 나빠지고 난방기로 인한 가스 등으로 공기가 탁해지면서 머리가 띵해진다. 뭔가 집중해서 풀어야 할 숙제가 있어 뇌의 활동을 높인다면, 컴퓨터의 하드웨어에 열이 나듯 머리에도 열이 난다. 그것도 잘 풀리지 않는 딜레마성의 숙제라면, 머리는 더 복잡해지고 마침내는 열이 나다 못해 쥐가 내리는 듯하기도 하다.
복잡한 현대사회, 빠르게 바뀌는 시스템, 이것을 따라 잡으면서 살아야 하는, 이것을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라고 하는가. 현대인들의 머리는 항상 스트레스 속에서 답답하고 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頭無冷痛이라, 머리는 가을산처럼 항상 시원하고 맑아야 한다.
가을산에서 불어오는 한줄기의 시원한 바람처럼 생활 속에서 맛볼 수 있는 방법이 차제에 있다. 머릿속에 가득 찬 풍열을 경청한 바람처럼, 상큼한 방향으로 날리는 것으로 차제가 갖고 있는 제형상의 장점이 있는 것이다. 탕제처럼 오래 끓이지 않고, 살짝 담궈 경청하고 가벼운 향기만 담아 마시는 것이 바로 차제이기 때문이다. 탕제에서도 後下함으로써 처방의 묘미를 살리려 하지만 그 경청한 기운을 살리려는 의미에서는 차제를 따라가지 못한다.
형개, 방풍, 박하, 우방자, 국화, 다엽, 소엽, 천궁, 백지, 석창포…. 가을산에서 맛본 청량한 공기처럼 우리 한의학에는 머리를 맑게 하는 많은 한약재가 있다. 스트레스 속에서 스트레스와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머리를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우리 한의학이 현대인에게 보다 더 어필할 수 있는 학문이 되지 않을까. 한방 선호도를 높여야만 하는 요즘 많은 한의사와 함께 한 번 방안을 찾아보고 싶다.
허담/ 한의사. (주)옴니허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