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과 茶劑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접근하며 기분 전환과 체질 개선에 응용할 수 있는 茶劑 등 환자들
요구에 부합하는 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꿈이었다. 꿈 속에서 난 학교 선생님이다. 내가 열강을 하고 있는데 반해 학생들은 삐딱하게 앉아 뭔가 도전적인 자세로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의 수강태도가 못마땅했다. 그런 모습에 마음이 점차 답답해지고 드디어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선생이고 너희는 학생인데, 그런 식으로 선생을 무시하는 듯한 눈초리로 강의를 들으면 되냐고 엄청 화를 내던 중에 잠을 깼다.
시간은 아직 새벽 4시가 되기 전이다. 왜 하필 이 시간에 이런 얄궂은 꿈을 꾸게 됐는가 되새겨 보았다. ‘나는 선생이고, 너희는 학생인데…’ 라는 생각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건방진 태도로 강의를 듣는 요즘의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내 마음을 여는 것보다, 선생으로서 받아야 할 예우에 집착해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꿈 속의 선생과 학생처럼, 현실에서도 한의사와 환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뭔가 잘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우하고 있는지…. 과연 환자들은 한의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는지…. 꿈 속과 마찬가지로, 예전 같지 않은 환자들에 대해 답답해 하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꿈에서 깨어난 이후 계속 이어졌다.
한의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가 점차 부족해지는 것도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족 때문이 아닐까. 한약에 대한 불신으로 ‘차라리 홍삼을 먹지…’ 하는 건방진(?) 소비자들에 대한 답답하고 화나는 심정이, 마치 꿈 속의 선생과 학생처럼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없이, 변해 버린 세상을 원망하고만 있는 심정과 같게 느껴진다.
설령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 있다 해도 의사의 우월적인(?) 위치를 이용해 우리의 방식이 옳으니 따라오라고만 하는 방식은 아닌가. 마치 쓴 한약을 비닐봉지에 담아 옛날부터 이렇게 복용했으니 이렇게 드셔야만 한다고 강요하고,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먹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시오’ 라고 말하면서, 환자들이 불편해 하든 말든,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 우리의 원칙과 현실만 얘기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환자들에게 투약하기 위한 제형으로만 본다면, 중국의 약재산지에 위치한 작고 초라한 중의 문진소에서 만난 적각의(赤脚醫) 즉 맨발의 의사들이 보통의 우리 한의원보다 더 다양한 제형을 운용하고 있음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그것은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 옛날의 우리 선배 한의사들이 환자들의 요구에 의한 다양한 전통제형 방식을 갖추고 있었다는 의미이고, 그 말은 현대의 우리보다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다.
급성병 및 응급상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散劑, 만성병 및 완만한 질환에 오랫동안 복용할 수 있는 丸劑, 물로 달여 먹는 것보다 알코올로 침출해 먹는 것이 더 좋은 酒劑,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접근하며 기분 전환과 체질 개선에 응용할 수 있는 茶劑 등…. 아니면 현대의 제형에 맞는 엑스제 등 제형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느낌, 이것을 간밤의 꿈과 연결시켜 보는 것이 지나친 해석일까?
허담/ 한의사. (주)옴니허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