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장작을 때는 전통방식 경옥고 작업.

개소리 닭소리 안들리는 깊은 산 속에 집을 짓고 경옥고를 빚어 본 적이 있다. 밤새 동솥에 끓는 물소리를 견주어 가며 장작을 때다 보면 사이사이의 토막잠도 꿀맛이다. 밤의 피로를 풀기 위해 새벽에 경옥고를 푼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신다. 찻잔 옆에 붙은 찌꺼기도 아까워 다시 찻잔을 헹구듯 물을 부어 마신다.

오랫동안 경옥고를 만들면서 경옥고의 주약은 아마 생지황과 복령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9증9폭으로 법제한 숙지황의 쓰임새 못지 않게 생지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약이다. 땅의 정수를 뽑아 갈무리한 약성을 지닌 생지황은 무와는 다른 끈적이는 진액 같은 무엇이 있다. 즙을 짜고 반죽할 때 느낌에서도, 맛에서도, 그리고 임상에서도….

“숙성을 통해 서로의 기운이 합해져 인삼, 복령, 지황, 꿀이 아닌 경옥고라는 명약이 탄생한다”

그래서 생지황은 유독 혈액과 관련이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혈약으로 작약과 목단피가 있지만 생지황은 또 다른 느낌으로 혈액의 응체를 풀어주는 좋은 약이다. 생지황의 즙을 가열과 증발로 졸여나가면 찬 성질은 감해지고 마치 링겔처럼 메마른 땅을 적시는 보음 양혈의 좋은 효능을 가지게 된다.

경옥고 차 한잔.

복령은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 영생 불멸의 기운을 가진 약이다. 자양분을 주는 소나무의 뿌리는 썩어 들어가도 복령은 오랫동안 생생히 살아남는다. 복령의 주성분은 물에도 잘 녹지 않아 가루로 만들어 통째로 먹어야 효과가 좋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경옥고는 영생 불멸의 기운을 담은 복령을 매일 먹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꿀은 수많은 벌들이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든 정화이다. 벌들은 빽빽하고 치밀하게 자신과 자손이 생명을 이어갈 양식을 압축하여 갈무리한다. 경옥고에서는 생명을 이어갈 양분을 좋은 꿀에서 취하였다. 꿀과 약재가 반죽이 되면서 중탕으로 고아지고 또 고아져서 작은 양으로도 큰 에너지를 낼 수 있게 응축시킨다.

“경옥고는 젊음을 추구하던 옛 사람들이 영생불멸의 기운을 매일 먹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경옥고에 인삼이 들어가지만 소량이라 생명을 불어넣는 촉매와 같은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풀무질을 하듯 경옥고를 통해 들숨 날숨을 계속 이어나가는 추동력을 인삼으로 역할을 하게 한 것이 아닐까.

5일간의 밤낮을 아우르는 작업을 마친 다음 반드시 거쳐야 할 숙제가 있다. 바로 숙성의 문제이다. 4가지의 재료가 섞이긴 했지만 하나의 기운으로 통일되기 위해선 부족하다. 차분히 가라앉는 숙성의 기간을 통해 서로의 기운이 합해져 인삼, 복령, 지황, 꿀이 아닌 경옥고라는 명약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경옥고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깊은 맛은 숙성의 정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게 됐기에 이야기해 본다.

경옥고와 관련된 많은 문헌을 찾아보면서 무병장수를 꿈꾸는 많은 사람의 욕구를 맞추기 위해 많은 의학자가 고민했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육신을 바라보며 젊음을 유지하고자 했던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은 곧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에….

허담/ 한의사. (주)옴니허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