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에도 철이 있는데 칼바람 피할 데 없는 한겨울에 논가운데에 자기 논차례를 기다리며  품앗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모작으로 심은 택사수확이 한창인 전남 여수 덕산면 풍경입니다.
利水之材로 잘 알려진 택사는 전라남도 순천, 여수에서 주로 재배하는데, 초복에 묘밭에 파종하여 추석전 논농사를 마감하면 휴농지에 물을 대고 모내기합니다.
워낙 가벼운 택사씨앗이기에 매일 묘밭 물을 빼고 갈아 넣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물위에 동동 떠서 물에 휩싸이면 일년농사를 망치기에 뿌리가 충분히 뻗기 전까지는 눈을 뗄 수 없다 합니다.

논은 담수라는 매우 효율적인 토지관리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밭과 달리 연작피해가 없습니다. 담수하는 논에 너무나 궁합이 딱 맞는 택사인지라 이모작이 가능한 이 지역에서는 너무나도 택사농사로 한겨울을 부지런하게 보냅니다.

본밭에 이식된 택사는 한두번의 진딧물과 다툼후에는, 꽃대를 올리고 베는 전투가 농삿일의 대부분입니다.
뿌리로 가야할 양분이 꽃대로 낭비되는 것을 막아 튼실한 택사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씨앗을 맺으려는 택사의 노력을 어떻게든 꺾어야 하기에 택사 꽃대가 너무나 밉상이라고 하십니다. 수확한 택사는 씻고, 말리고, 탈피하고, 절단하여야 약재가 되기에 아직도 할일이 많다 하시지만, 올해도 땀흘려 일한 결실을 맺게된 농민들의 얼굴은 한껏 밝아 보였습니다.

비온 뒤 급격하게 기온이 많이 낮아질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완전무장을 하고 찾은 영덕, 영해….
이곳에서 한창 옴니허브의 갈근 채취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하여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새벽부터 갈근을 캐기 위해 먼저 산을 오르셨다는 어르신들을 따라잡기 위해 서둘러 움직여 도착한 영해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따뜻한 햇살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다보니 길이라고 하기엔 발 한쪽 딛기 어려운 좁은 입구가 하나 보였는데, 아마 어르신들께서 산을 오르기 위해 만들어 두신 듯합니다.
그 곳을 시작으로 하여 오르기 시작한 산은 웅성하게 우거진 나무와 나무넝쿨들로 인해 길이라곤 알아볼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어디쯤 몇 분이 계신지도 모르는 상황에 무작정 소리를 질러 그 분들의 위치를 알아내기란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듯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 산을 헤매었을까 어디선가 들리는 반가운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려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러보니
우리보다 먼저 오른 어르신들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다름 아님 경사가 급격한 산자락으로 여러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반가운 갈근넝쿨과 우리의 최고의 적이었던 찔레꽃 가시 줄기들이 앞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로 헤쳐 나가다보면 찔레꽃 가시가 바지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것을 손으로 거부하다 남긴 영광의(?) 상처들은 아직까지도 쓰라린 듯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상봉을 하여 뵙게 된 어르신들…..

우리의 어려운 고난을 어찌 아셨는지 우리 일행에게 보여주시려는 듯 때마침 아주 어마어마한 갈근 한 뿌리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경사진 땅을 얼마나 파헤쳐 내려가셨는지 칠순이 다되신 연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준비해간 새참을 드시는 사이 잠깐 거들어보려 갈근 주위 흙을 파내보았으나 땅이 워낙 단단한지라 땀만 비 오듯, 성과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행여나 월척에 흠이 생길까 쉽사리 괭이를 휘두를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목만 약간 축이시더니 다시 땅을 파내려 가기 시작하십니다. 어찌나 깊이까지 뿌리를 내려 있는지 땅을 파내고 파내도 끝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을지 모두들 기대에 부풀어 한곳만 집중을 하고 있어 갈근 한 뿌리 캐어내는데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젊은 시절 갈근을 캐 보시고 세월이 흘러 최근에는 처음으로 작업을 하시는 거라 말씀하시만 그 힘만은 청년시절 못지않은 듯합니다. 힘들게 실랑이를 하다 드디어 몸뚱이를 전부 드러낸 놈은 10Kg는 거뜬해 보입니다. 혼자서 힘겹게 들어도 보았지만 행여나 흠집이 날까 조심스럽습니다.

그렇게 반나절을 고생해서 모아진 갈근은 한 분당 60~70Kg정도로 날마다 차이는 있다고 하십니다.
점심식사시간이 되자 어르신들은 각자 캐어낸 갈근을 자루에 담으시더니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그것들을 어깨에 메고는 길하나 없는 가파른 산을 내려가십니다. 일행들도 그 뒤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따라갔으나 도저히 너무 험하고 미끄러운터라 뒤따를 수가 없어 편한 길을 찾아 두르고 둘러 산을 내려왔습니다.

산을 내려와 어르신들을 찾아간 곳은 언제부터 시작을 했는지 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계십니다.
아마 점심메뉴는 삼겹살파티가 벌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도구가 너무 부족해 보였는데 갑자기 어르신 한분께서 나뭇가지 여럿을 구해오시더니 낫으로 끝을 뾰족하게 만드십니다. 그때까지는 어떤 일이 벌여질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어르신들은 나뭇가지를 하나씩 나누어 가지시고는 길다란 삼겹살을 꿰어 불가로 다가가 고기를 굽기 시작하십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 하지만 맛 또한 난생처럼 맛보는 기가 막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맛입니다.

그렇게 점심을 해결하고 저희는 어르신들의 오후 작업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갈근 건조작업장을 둘러보기 위해 산을 내려왔습니다. 영해시장 근처에 위치한 작업장은 갈근 건조만을 위한 비닐하우스로 길이가 대략 50m는 될 듯합니다. 입구에는 아주머니 한분께서 직접 일일이 손으로 절단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우선 커다란 갈근을 작두로 편 모양으로 자른 다음부터는 칼로 직접 일일이 깍둑썰기를 하고 계십니다. 옆에서 도와드리려 칼을 잡았으나 워낙 갈근의 질이 단단하여 잘려지지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저의 모습에 장갑을 벗어 보이시며 갈근 칼질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반복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손을 보여주십니다.

모든 약재가 그러듯 갈근 또한 약재로 유통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고 그분들의 땀과 피가 묻어 있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無根의 火를 瀉한다는 玄蔘.

현삼은 맛은 달면서도 약간 쓰고 성질이 凉하고 液이 많아 腎經을 淸熱하는 약재입니다. 현삼은 立冬을 전후로 채취하는데 한참 수확중인 현삼밭에 다녀왔습니다. 경북 안동의 산기슭에서 10여 년째 현삼 농사를 지어오고계신 옴니허브와도 몇 해째 인연을 맺고 있는 현삼밭을 찾았습니다.

현삼 캔다는 소식에 카메라 손에 들고 나섰다가 호랑이가 장가라도 가는지 햇살이 무색할 정도로 오락가락 줄기차게 쏟아지던 비에 발걸음을 돌렸던게 며칠 전… 다행히 너무도 크고 예쁜 무지개라도 보지 못했으면 너무도 억울했을 겁니다.

오늘은 일기예보에도 비소식 없이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가 될거라는 소리에 안심하고 출발해 봅니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도착한 곳. 현삼밭 올라가는 길은 굉장히 가파르고 좁은 산길이었습니다. 이렇게 올라가기도 힘든데 캐어낸 현삼은 어찌 다 지어나를까 하는 걱정이 먼저 되더군요. 높은 산 중턱에 천 평 정도 되는 밭이라기에 아주머니들 여럿이서 일하시고 계시겠구나 하며 올라간 현삼 밭에는 비좁은 길을 어떻게 끌고 올라왔을지가 더 의문스러운 경운기 한대와 노부부 두 분이서 현삼을 캐고 계셨습니다.

잘라놓은 뇌두나 종묘를 이용해 올 봄에 심은 현삼의 지상부는 어른 키만큼 자란 후 서리를 맞아 비쩍 말라지면 지상부를 잘라내고 잡풀이 자라지 않도록 덮어둔 비닐을 거둬냅니다. 이렇게 한 후에야 어르신이 곡괭이로 땅을 파시고 그 뒤를 따라 아주머니께서 흙 위에 올라온 현삼의 흙을 털어내고 잔뿌리를 잘라내서 여러 개 붙어있는 현삼 뿌리를 하나하나 나눠 놓습니다. 기계를 이용하면 빠르고 힘은 덜 들어 좋겠지만 뿌리가 다쳐서 일일이 곡괭이질을 해서 캐야 한다며 이 밭도 일주일이 넘어서야 다 캤다는 말씀에 아직도 너무 영세한 농가사정에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올해 현삼이 여태 농사 지어온 것 중 제일 실하고 알이 많다며 환히 웃으시더군요.

[지상부 자르기전]

-경운기에 현삼을 싣고 비좁은 산길을 한참이나 돌아서 내려오는 길.

玄蔘은 중국과 국내 기원식물이 약간 다른 약재로 국내의 현삼(Scrophularia buergeriana Miq)은 중국에서는 북현삼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북방지역에서 중국현삼(Scrophularia ningpoensis Hemsl)과 함께 상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삼은 중국산의 유통량도 꽤나 많은 양을 차지하기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현삼 재배 농가를 찾기가 힘들고 국산 현삼의 생체 가격은 꽤 높습니다. 그런대도 국산이라며 유통되는 현삼의 가격이 낮은 이유는 무엇인지 참 아이러니합니다.

채취된 현삼은 여러번의 세척과정을 거쳐서 이물질과 흙, 잔뿌리들을 제거한 뒤 火乾의 방법으로 건조됩니다. 일반 약재들은 약성의 보존 측면에서 陽乾이나 陰乾을 하여야하나 현삼은 지황과 같이 진액이 많은 약재로 양건을 할 경우 津液이 너무 많이 빠져나와 완전히 건조하고 나서 보면 속이 비고 껍질만 남은 것처럼 되어 볼품도 없을 뿐더러 진액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火乾의 방식을 택해 건조합니다. 작년에도 陽乾을 하였다가 낭패 보았던 것을 거울삼아 올해엔 제대로 된 현삼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세척 작업을 철저히 하여서 흙이나 이물질 없는 깨끗한 玄蔘을 만나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푸르름을 자랑하던 들녘은 이제 울긋불긋한 오색 향연을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자색의 꽃대를 피웠던 경북 고령의 향부자 밭도 어느새 그 푸르름을 감추고 벌써 농민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주고 있었습니다.

향부자의 수확은 불로 시작을 합니다. 먼저 서리가 내린 후 말라붙은 향부자 밭에 일제히 불을 지핍니다. 이번에 갔을 땐 벌써 불을 지펴 땅위 줄기들은 모두 태워지고 옛날 까까머리 총각의 머리 마냥 새까만 흔적만을 남겨 놓고 있었습니다. 좀 더 일찍 향부자 밭을 찾았다면 좋은 불구경(?)을 할 수 있었겠죠?

이렇게 지상부를 태워버린 후 향부자 수확을 위해 1억원을 들여 특별히 제작했다는 트렉터를 이용해 밭을 갈아엎습니다.


그 후 갈쿠리를 이용해 땅속에 있던 향부자 괴근과 잔뿌리들을 위에 고루 펼쳐 놓습니다.

이렇게 해서 15~20일 정도를 앞뒤로 뒤집어가며 건조합니다.

건조가 다 되면 향부자 괴근만을 골라내는 작업을 합니다.
토치를 이용해 불로 향부자의 잔털과 잔뿌리들을 태우는 작업이지요.

내일 비가 올거라는 기상예보에 향부자 밭 농민들은 비상이라며 일손을 바삐 움직이십니다.
애써 보름이상 말려 놓은 향부자에 비를 맞춰버리면 다시 20정도를 말려야 하는 번거로움과 노역비까지 들어가면 못해도 몇 백만 원은 손해를 입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향부자의 잔털을 제거하는 작업까지 하게 되면 밭에서 하는 작업은 끝이 납니다. 잔털까지 제거된 향부자는 이제 가공공장으로 들어가 선별과 도정 그리고 세척과 절단 작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조를 거치게 되어 비로소 향부자가 됩니다.

지금 시중에는 일찍 출하된 햇 향부자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향부자는 워낙 생산량이 많은 품목이어서 재배지 조성 없이 A급만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저희 옴니허브에서는 농가의 수확작업이 마무리되는 12월경에 가공작업을 마친 향부자를 구매할 예정입니다. 그때 향부자 가공과정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향부자는 평당 4~5근이 수확되면 풍년작이라고 하는데 올해는 부족한 일조량에 초기에 내린 비가 너무 많았고 수확기 전에 너무 가물었던 탓에 수확량이 2근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여 2배정도의 가격상승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들녘에 일하시던 분들이 모두 60~70세의 할머니, 할아버지시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마도 향부자를 보면 그 분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한 날씨에 구기자를 본다는 부푼 마음으로 도착한 청양..

영천에서 장시간 차를 달려 도착한 청양은 구기자의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70%가 생산되고 있는 말 그대로 구기자의 본고장 이다. 재배농가에 도착해서 보니, 여름구기자의 수확은 거의 끝이 났고, 곧 9월이 되면, 본격적 가을 구기자의 수확이 시작 되는데, 가을구기자는 9월 초에서 10월 초까지 수확을 하며,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름 구기자 이후 익는 차례로 수확을 하게 된다.

시설 속에 자라고 있는 나지막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다홍빛의 열매들.
여름 수확이 끝 난지 얼마 되지 않아 군데군데 매달려 있었지만, 수확하기 전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을 구기자를 상상하니 그 자체 만으로도 환상적이었다.
청양은 축제 준비로도 한창 분주했는데, 9월 초 있을 고추,구기자 축제는 다양한 체험 행사도 준비 되어 있어 꼭 한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주, 환, 차등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는 구기자의 매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末伏에 六神曲 작업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육신곡은 산사, 맥아와 함께 三仙의 하나로 逍食健胃에 빠져서는 안 되는 약재입니다.
신곡은 육곡(六穀) 또는 육신곡(六神曲)이라고도 하며, 밀가루에 행인(杏仁) · 적소두(赤小豆) · 청호(菁蒿) · 창이(蒼耳) · 랄료(辣蓼)의 6가지 약재를 찧어서 취한 즙을 고루 섞어 반죽하여 떡처럼 빚어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오랫동안 발효시킨 약재로 일 년 중 여름 한 철에만 작업하는 약재입니다.

원래 신곡은 말복이전에 만들어야 하는 약재이나 올해엔 여름 장마가 길어진 탓에 조금 늦어졌습니다.
육신곡의 작업은 청호와 창이 그리고 여뀌 잎에 이슬이 맺혀있는 꼭두새벽부터 시작됩니다.
아침 햇볕에 이슬이 마르게 되면 이상하게도 생즙이 덜 나오기 때문에 이른 새벽 강가로 나가 청호와 여뀌를 채취해 옵니다. 지상부의 연한 줄기와 잎을 짓찧어 얻은 생즙으로 육신곡을 만들기 때문에 지상부의 생장이 가장 왕성한 이때 육신곡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산 재래종의 적소두. 시중에서 보기 힘든 재래종으로 길이가 좀 더 길고 얇습니다.

통밀. 국산 통밀로 역시 시중에서 보기 힘들지요

행인. 옴니의 유피 행인을 사용합니다.


여뀌. 소가 풀을 뜯고 지나간 자리에는 여뀌만 남는다 할 정도로 매운맛이 강한 참여뀌.
강가 등의 습지에서 자라는 여뀌는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그 중 참 여뀌를 찾아 작업하였습니다.


청호. 강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청호는 인진과 많이 혼용되는 약재이지요.

창이. 굵은 대는 제거하고 연한 가지와 잎만을 사용합니다.

청호, 참여뀌, 창이를 짓찧어 생즙을 만듭니다. 여뀌의 아린 맛과 풀향기 진한 鮮汁입니다.

선즙과 잘 섞고 분쇄하여 압착시킨 후 자연 발효시킵니다.

옛부터 한 여름에 신곡을 만들어 온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30℃를 웃도는
한 여름이라야 자연 발효가 가능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작업된 육신곡은 앞으로 6개월 동안 발효와 숙성을 하게 됩니다.
잘 발효된 신곡은 누르스름한 꽃이 피게 되는데 이렇게 잘 발효된 신곡은 파쇄한 후 炒 작업을 한 번 더 거친 후 炒六神曲으로 완성되어 내년에 회원 여러분을 찾아갈 것입니다.

작년에 잘 발효된 육신곡은 올 해에 비로소 빛을 보고 있지요.

복의 마지막 말복(末伏) 여름햇살에 얼굴이 따가웠던 8월9일 오미자를 보러 재배지를 다녀왔습니다.
오미자는 몸을 건강하게 하고 정신적 및 육체적 활동력을 높이며 피로를 막는 등의 효능이 있는 좋은 약재로 널리 사랑 받아온 약재입니다.
몇 해 전부터 밭에서 포도, 사과 등 의 과수처럼 재배를 하고 있지만, 산골짜기에서 자라던 야생의 습성이 남아있어 병충해에 강하다고 농민들이 자랑을 합니다.

9월에 홍색으로 익기 전 파란 오미자가
나무 대신 고정해 놓은 긴 철사를 무럭무럭 잘 타고 올라 동굴 동굴하게 맺혀 있습니다. 따가운 여름 햇살에 부끄러운 듯 빨갛게 익어가는 오미자가 마치 여자아이의 홍조 빛 띤 얼굴 모양입니다.
땀을 흘리며 사진을 찍는 내내 한번 씩 불어오는 여름바람에 상큼하면서도 달달한 오미자가 익어가는 향이 코끝을 스치니,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오미자차가 간절히 생각나더군요.
이 작고 동그란 열매가 빨갛게 익어 5가지의 맛을 낸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장마철에 비피해도 있었지만 다행히 빠른 복구와 장마 이후 좋은 날씨 때문에 좋은 품질의 오미자를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김새만 알고 있다면 시골 산자락 어디서건 흔히 만날 수 있는 두충나무…
대구에 근접한 하양에서도 두충나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10m를 훌쩍 넘는 20년 된 두충나무 밭입니다.
수년째 두충나무 수피를 벗겨 오신 어르신들의 손놀림에 두충나무는 매끄럽고 하얀 속살을 드러냅니다.
고무줄 양쪽 끝에 주걱과 칼을 달아놓은 연장 하나에 두충 수피가 여기저기 쌓여갑니다. 몇 년 째 두충 수피를 벗기신다는 할머님. 능숙한 손놀림에 두충수피는 여지없이 벗겨져 나갑니다. 15~20년의 세월이 이 0.5㎝의 수피에 담겨있다 생각하니 손에 들려진 두충이 그리 귀히 여겨 질 수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로 다져진 솜씨라지만 어찌 그리 찢기지도 않고 수피를 잘 벗겨내시나 찬찬히 살펴보니 이렇게 하십니다.

먼저 칼로 키 높이에 맞추어 가로로 나무기둥을 둘러 칼집을 냅니다.
그 후 그어진 가로선에서 출발하여 아래쪽으로 선을 긋습니다. 그리고 세로로 칼집 난 두충나무 속으로 주걱을 집어넣으며 두충수피를 들쳐 냅니다.

새하얀 속살에 묻은 맑은 수액이 보이시나요?

수액을 손에 묻혀 손등에 문질러 봅니다. 끈적거리면서도 매끄러운 느낌이 왠지 피부가 아주 고와질 것 만 같습니다. 한 번 수피를 벗긴 두충나무는 다시 수피를 벗길 수 있을 때 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익성이 많이 떨어져 지금은 두충나무들이 많이 베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두충 밭도 마지막 제 소임을 다한 채 베어지고 있습니다.

수피가 벗겨진지 며칠이 지난 두충나무는 벌써 이렇게 까맣게 변해 있습니다. 10년 전 쯤 두충나무가 약으로 쓰인다하여 이산저산 빽빽이 심어진 탓에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5~20년 된 나무는 그리 흔치는 않다고 합니다. 옴니허브에서는 수령 15~20년 된 두충나무만을 선별하고 수령이 안 되거나 가는 줄기 부분은 남겨둔 채 지상으로부터 2m까지의 굵은 나무의 수간피만을 벗겨냅니다. 그렇게 벗겨낸 수피들은 번거롭지만 수작업을 통해서 코르크층을 일일이 제거한 뒤 날씬한 두충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경북 고령은 낙동강을 따라 많은 약재들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향부자 밭을 지나 박하 밭으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소비량이 많아 단지화 되어 있는 향부자와는 달리 박하 밭은 그리 넓지 않은 밭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안동에서도 재배가 되고 있으나 그것은 요즘에 단가가 맞지 않아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박하향이 미풍에 실려 나비들까지 불러 모았는지 멀리 보이는 박하 밭에 나비들이 서성이고 있습니다. 진한 향 때문인지 박하가 있는 곳엔 벌레가 많이 없다는데 나비들은 박하향을 좋아하나 봅니다.

박하는 1년에 두번 채취를 합니다.

장마가 끝난 후 7월 말에 한 번, 그리고 가을에 한 번 수확을 하여 건조합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약재들은 고유의 약성을 지키기 위해 양건을 하는 것이 좋으나 박하는 건조기를 이용하되 저온으로 건조하게 되면 녹색 잎 그대로의 색으로 만들 수 있어 박하만큼은 건조기를 이용하여 건조를 시킵니다.

박하 줄기를 훑었던 손에서 박하향이 그득합니다. 이 향 그대로 CCS회원님들께 전해지길 바래 봅니다.

흙 채취 모습

토양 검사를 하기 위해 박하 밭의 흙을 채취하는 모습입니다. 건강한 땅에서 건강한 박하가 나오겠지요?

이 글은 옴니허브닷컴에 2006년 7월 4일에 등록된 글을 각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