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을 다시 찾았습니다.
일년에 한번 있는 5월 8일 어버이날을 바쁘다는 핑계로 흘려 보내고, 어쩌지 못하고 마음 한편에 자리한 죄송한 마음을 조금 씻어 낼 수 있을까… 밀양 얼음골 계곡의 시원한 바람으로 회초리를 갈음할 수 있을까… 그러면 마음이 좀 편할까.. 싶어서..
물론 약재 산지를 다니며 농민들과 얘기 나누고 음식을 함께 먹고 약초 얘기를 듣는것이 또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지으실 수 있도록 정보를 드리고 그분들의 고충을 들어 드리고.. 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지요..^^
5월에 다시 찾은 밀양은 3월 하순부터 시작해서 4월 내 내 온 가족이 동원되어 땀흘리며 일한 결과로서의 맥문동을 시장에 내다 파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일반 논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가을에 돈을 만지지만 이곳 사람들은 5월에 돈을 만집니다.
3월말에 찾았던 밀양의 맥문동 수확 현장입니다. 이제는 이런 모습 온다 간데 없고..
어떤 아저씨가 낮부터 거나하게 한 잔 하시고 자랑스럽게 꺼내 보여준 반짝 반짝 빛이 나는 최신형 핸드폰.. 내가! 맹문동 팔아가!! 이거 항개 샀다 아이가!!!
맥문동 수확은 다음 내년 농사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약재 하나 하나 이해하고 뒷 얘기를 나누다 보면 진정으로 그 약을 이해하게 되고 또 그 약을 만드는 농민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수확한 맥문동은 엄청난 일꺼리였고 또 한해 농사의 대가를 벌어준 돈벌이가 되었습니다. 그 맥문동을 키워낸 건 농민과 맥문동(풀)이었지요.
농민은 한 해 더 고생스럽지만 농사를 지어야 하고 맥문동도 지쳤겠지만 한 해 더 자기 몸을 쪼개 다시 한번 희생해야 합니다.
맥문동은 한 해 이상을 키우면 포기만 무성해 지고 굵지한 맥문동을 달아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맥문동이 요구하는 지력(땅심)이 워낙 커서 연작은 절대 불가능하고 한번 맥문동 농사를 지은 땅은 최소한 3년 동안은 놀리거나 다른 농사를 지어야 다시 맥문동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합니다. 땅의 진액을 있는 대로 뽑아올려 뿌리에 담아내는 모양입니다.
잎사귀 마저도 두텁고 윤택하게 빛이 나며 외부로 아무 것도 새어나가지 않을 듯한 모습이 그렇고, 지상부를 최소화한 모습이 그렇고, 그늘을 좋아하며 키를 낮게 낮추어 햇볕으로부터 얻기보다는 햇볕에게 잃는 것을 방지하는 듯한 모양이 그렇습니다.
땅속을 보면 산지 사방 수없이 뻗어 내린 뿌리의 모습이 또한 그렇고 겨우 모양만 갖춘 꽃의 모양이나 탱글탱글 꽉 찬 모습의, 그것도 검은 색의 열매가 그렇습니다.
아마 그런 모습속에서 맥문동의 약성이 생기겠지요.
화단에 심겨진 맥문동 입니다. 어느새 이렇게 잘 자랐는가 했더니 길을 가던 아주머니 말씀이 작년에 심은 건데 봄에 윗둥치를 잘라주면 저렇게 파랗게 솟아올라 보기 좋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뿌리에 달린 맥문동을 훑어낸 후의 맥문동은 초라합니다. 부분부분 누렇게 변색되고 시들기고 하고 뿌리는 말라있고 상처투성이입니다. 하지만 그 생명력은 거의 ‘불가사리’와 같습니다. 오랜 세월 다져진 시골집의 단단한 마당 구석에 그냥 던져 놓아도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갈기갈기 찢어 던져 놓아도 살아난다니 말입니다. 맥문동을 훑어낸 후의 맥문동 더미 입니다. 저렇듯 거칠게 다뤄줘야 강인한 생명력을 보다 더 갖게 되는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입을 다시 낫으로 잘라주어야 잘 자라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일지, 담요에 방석 대신으로 쓰는 모양이고 저 도끼는 어디에 쓸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커다란 맥문동 둥치는 이렇게 잘게 쪼개어져 다시 커다란 하나의 맥문동으로 자라납니다. 최소한의 조건 속에서 강하게 키워내는 것 이겠지요.
올해 농사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겁나는 3월, 지쳐버린 4월을 뒤로하고 돈 만지는 5월엔 그 대가로 이내 다시 밭에 나가야 합니다. 마당 한 켠에서 수확한 후의 초라한 맥문동을 밑천으로 또 한 해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들고 다시 보다 더뜨거워진 햇볕 아래의 밭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할머님은 자식을 모두 서울에 떠나 보내고 혼자서 맥문동 농사를 지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값을 더 쳐주어야 한다고 하십니다..(얼마나..?)
집에서 잘 다듬어 내온 맥문동 포기를 나름대로 줄을 맞추어 하나씩 하나씩 심습니다. 올해엔 봄비가 지리하게 오래 와서 올해는 늦었다고 걱정하시면서 말입니다.
꽃대가 올라서고 보라빛 올망졸망한 맥문동 꽃이 필 때 다시 찾고 싶습니다. 까만 게다가 둥그란 열매가 알알이 달릴 때 다시 찾고 싶습니다. 그러면 맥문동과 보다 친해질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옴니허브닷컴에 2002년 5월 9일에 등록된 글을 각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