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차와 함께하는 계피의 온향(溫香)
한의사 허담이 쓰는 한방차 이야기(43)

여러가지 한방차를 만들 때 계피는 좋은 소재가 된다. 수정과니 쌍화차니 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맛은 계피의 향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함께 가지게 한다. 그래서 차를 만들기에 편하다.

한방차와 함께하는 계피의 온향(溫香) 이층에 홀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도시의 가로수가 반쯤 옷을 벗었다. 차가 지나가며 불어내는 바람에 그 마저 앙상한 속살을 드러내 보인다. 여름의 무더위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와 도시의 가을은 깊어만 가는가 보다.

오십을 넘은 나이에 눈처럼 휘날리며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는 것은 마치 자신의 앞날을 예고하는 것 같아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기 마련이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들으며 나처럼 늙어가는 주막집의 아낙이 따라주는 막걸리 한잔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 마저 몸 생각하여 마셔야 하는 요즘이 아니던가.

상하의 나라 베트남으로 육계를 찾아 떠난 적이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더운 열기가 밀려와 두꺼운 외투를 벗고,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로 갈아입고는 시내로 들어갔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들과 오토바이에 쌍쌍이 앉아 긴 머리를 휘날리는 아오자이를 입은 젊은 청춘들의 물결들이 기억난다. 육계를 찾아 떠난 시골에서도 낯선 이방인들에 대한 햇빛을 가리는 뾰족 모자를 쓴 베트남 사람들의 친절이 생각난다. 작고 소박한 집 한켠 부엌에서 옥수수를 구워 건네던 베트남 할머니의 자상한 손도 기억이 난다.

이처럼 계피를 생각하면 멀리 남쪽나라의 따뜻함과 소란스러움, 수다스러움이 연상이 된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시작되면 그 나마 주위를 감싸던 많은 것들이 떠나고 홀로 남아 있음을 느낀다. 이때는 지나간 계절의 따뜻하고, 소란스럽고 무성하여, 오히려 시끌벅적해 불편했던 그것까지도 함께 그리워지는 것이 아닌가. 굳이 가을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계피의 향은 우리에게 친근하다. 계피를 갈아서 향미를 음미하노라면, 따뜻하고 살짝 매운 향이 코를 스치다 깔끔한 단맛이 뒤를 받쳐주는 것을 느낀다. 감초의 질펀한 단맛과는 분명 차별화 된다. 역시 추위와 냉기에 시달린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즐겨 찾을만한 향미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고독과 우수는 사람을 깊어지게도 한다지만 냉기에는 따뜻한 것이 약이 된다. 더구나 지금처럼 찬바람이 불어오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것도 창가에 홀로 앉아 스산함을 달래줄 무엇이 필요하다면, 계피의 溫香이 제격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시나몬의 온향은 세계인들이 즐기는 향미다.

사실은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는 얇은 두께의 향신료인 시나몬이 차의 재료로 주로 쓰인다. 계피보다 더 부드럽고, 따뜻하고, 예쁜 방향의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커피의 카푸치노에 시나몬 가루를 살짝 토핑 해 먼저 코로 시나몬의 따뜻한 향을 느끼고, 입술로 우유의 부드러움을 훔친 다음, 커피의 쓰고 묵직한 바디감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설탕에서 만들어진 단맛을 즐기는 것이다.

여러가지 한방차를 만들 때 계피는 좋은 소재가 된다. 수정과니 쌍화차니 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맛은 계피의 향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함께 가지게 한다. 그래서 차를 만들기에 편하다. 인삼과 어울리기도 쉽고 당귀와 때론 생강과, 아니면 귤피와 대추 등으로 한방차의 주재료들과 쉽게 조합이 되는 것이다. 특히 추위를 잘 타는 여성이라면 계피차가 제격이다.

녹차의 속을 깎아내리는 듯한 부담과 속에 가스가 가득 차는 불편함도 주지 않는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계피의 따뜻한 온향을 건네 볼까나….

허담 한의사·(주)옴니허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