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生, 서강대 신문방송학 학사 · 현 배상면주가 대표이사 사장 · 전통주 갤러리 ‘산사원’ 대표
배상면주가가 운영하는 전통술 박물관 ‘산사원’ 저장고 안. 인쪽이 배영호 사장
국내 주류시장은 와인 열풍이다. 와인은 저녁 비즈니스 모임마다 단골로 등장하곤 한다. 이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통술 문화를 고집하며 11년째 전통술을 빚어온 이가 있다. ‘누룩 황제’ 배상면 국순당 회장의 차남 배영호(48) 배상면주가 사장이다. 한방 약술 전문가인 한의사 허담이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포천의 전통술박물관 ‘산사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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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에서 차로 1시간 30분가량을 달리자 경기도 포천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포천은 예부터 물이 맑고 깨끗해 막걸리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이곳 운악산 자락에 배상면 주가가 세운 전통술 박물관 ‘산사원’이 있다. 건물은 갈색 지붕이 마치 바닥에 붙은 듯 독특하다. 지붕 아래엔 박물관 · 양조장 · 연구소 등이 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도자기 인형들이 눈에 띄었다. 정화수를 떠놓고 마음 가다듬기, 누룩 딛기, 탁주 거르기, 소주 내리기 등 전통술 제조 과정을 재현하고 있었다. 한 켠에는 배영호 사장이 전국에서 직접 수집한 누룩 틀, 소주 고리, 용수(술을 거르는 데 쓰는 도구) 등 제조 도구들이 술 빚는 순서대로 배치돼 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내부에 3층 높이로 서 있는 전통술 양조장(마이크로 브루어리)이다. 층별로 발효 · 증류 · 포장 단계로 나뉘어져 전통주를 만든다. 맨 위층의 겹오가리(항아리)에는 발효 중인 술들이 담겨 있다. 이 밖에도 술 빚는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가양주 교실과 배상면주가의 대표 상품인 산사춘 · 대포 · 복분자주 등을 맛볼 수 있는 시음대도 마련돼 있다.
산사원은 전통술을 알리기 위해 설립한 곳이다. 배 사장과 한의사 허담은 그곳에서 전통술의 의미와 효능, 그리고 전통술이 와인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허담(이하 허) = 프랑스 와인, 일본의 사케(酒), 멕시코의 데킬라 등은 모두 세계적인 술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만의 특성을 담은 전통술이죠. 우리의 전통술은 뭡니까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배영호(이하 배) =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술들은 그 지방 특성에 따라 발전 계승돼 왔습니다. 포도가 잘 되는 유럽은 포도주를 담갔고, 건조한 멕시코에서는 선인장 술인 데킬라가 생기게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는 곰팡이를 이용해 빚는 누룩술이 있습니다. 누룩 제조 방식에 따라 탁주 · 약주 ·소주 등으로 나뉘게 됩니다. 특징은 다른 술과 달리 음식으로 구분한다는 점입니다. 전통술은 음식이기 때문에 오미(五味; 쓴맛 · 단맛 · 신맛 · 매운맛 · 짠맛)가 조화된 맛있는 술을 좋은 술이라 하고,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먹어야 합니다.
허 = 한의학에선 약식동원(藥食同原)이란 말이 있습니다. ‘음식이 곧 가장 좋은 약’이란 얘기인데 술에도 적용됩니다. 예부터 술을 약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이를 약주(藥酒)로 부르죠. 약술은 순환기 질환과 암 예방에 효능이 있는 전통 누룩이 약재의 고유 기능을 향상시킵니다. 명나라 명의인 리스전(李時診)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칭송할 정도였습니다. 적당히 마시면 기혈을 돕고, 전신의 순환을 원화하게 해 병을 예방하거나 고칠 수 있어서입니다.
배 = 맞습니다. 전통술의 가장 큰 이점이죠. 누룩으로 술을 만드는 곳은 한국 · 중국 · 일본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라별로 사용하는 재료는 다릅니다. 중국은 누룩을 빚는 데 주로 찹쌀을 쓰고 일본은 쌀만을 이용해 술을 빚습니다. 반면 우리는 쌀겶喧?잡곡 등을 사용해 술을 빚습니다. 다양한 재료가 쓰이는 만큼 영양도 더 풍부합니다. 목욕술로 유명한 일본식 청주보다 우리 전통 청주가 효과가 뛰어납니다. 일본 청주는 도정한 쌀로 담그지만 전통 청주는 곡류 껍질째 씁니다.곡류의 껍질에는 단백질 · 지질 · 무기질 · 비타민 등 영양 성분이 많습니다.
허 = 약술은 만드는 과정은 간단합니다. 좋은 약재를 가지고 집에서도 쉽게 담가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오미자주는 오미자와 소주만 있으면 몸에 좋은 약술을 빚을 수 있죠. 오미자주는 심장을 강하게 하고 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있습니다. 평소 뇌를 혹사해 잠이 잘 안 오거나 쉽게 피곤해지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배 = 전통술도 집에서 담가먹는 가양주(家釀酒) 문화입니다. 전통술은 누룩에 쌀겫만?등 곡물 원료를 넣고 버무려 물과 함께 옹기에 넣어 발효시켜 만듭니다. 발효가 되면 맑은 물이 떠오르는데 이 물을 떠내면 알코올 도수 16도 전후인 약주가 되고 남은 찌꺼기에 물을 타서 체에 걸러내면 탁주, 즉 막걸리가 됩니다. 소주는 솥에 불을 때 알코올 증기를 받아내는 겁니다. 전통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누룩입니다. 술을 만들 수 있는 효소인 거죠. 전통술의 장점을 한 가지 더 얘기한다면 자연 친화적인 술이란 겁니다. 서양이나 일본은 술의 원료인 효모를 기계에 넣어서 발효합니다. 빨리 발효시키기 위해서죠. 중국 술도 70도 알코올에 한약재를 넣어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전통술은 옹기에 누룩을 담아두고 자연적으로 술이 발효되도록 합니다. 이렇게 건강한 상태에 만들어진 술에는 독이 없습니다.
▶흥미생주 · 백하생주 등 생주는 가열 처리를 생략해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있다.
허 = 그렇군요. 배상면주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전통술은 없습니까.
배 = 저희는 계절마다 세시주를 담고 있습니다. 세시주란 계절마다 때맞춰 피는 꽃이나 열매로 담근 술입니다. 봄엔 냉이를 캐다가 냉이술을 담그고, 여름엔 새콤달콤한 매실주를 빚습니다. 가을과 겨울엔 각각 들국화와 도소주를 담급니다.
허 = 도소주는 뭡니까.
배 = 도소주는 한약재인 육계 · 산초 · 도라지 · 방풍 등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담근 술입니다. 겨울에 나는 식물이나 열매가 없기 때문에 가을에 미리 약재를 준비해 뒀다가 겨울에 담급니다. 특히 도소주는 설날에 마시면 한 해에 모든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시주는 맛도 좋을 뿐 아니라 계절에 따라 담근 술로 몸에도 좋습니다.
허 = 약술과 비슷하네요. 차이가 있다면 약술은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일 년 내내 사시사철 복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을과 겨울에 비해 여름엔 음용하는 양을 조금 줄이면 좋습니다. 아무래도 약술은 치료가 목적이기 때문에 정확히 음용량을 지키면서 복용해야 합니다. 약술은 효능뿐만 아니라 제대로 음용하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이를 대중에게 더 많이 알리는 게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배 = 마케팅 측면에서는 전통술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아시겠지만 국내에서 잘 팔리는 주류 중 하나가 영국의 스카치 위스키입니다. 위스키를 마실 때 따지는 게 숙성연도죠. 햇수가 오래될수록 맛 좋은 술로 대접하고 가격도 비싸집니다. 프랑스 · 일본 · 중국 등은 대부분 이런 저장술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엔 없습니다. 일제 때‘주세령’이 시행되면서 세금을 내야만 술을 제조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전통주의 맥이 끊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맥을 이제라도 이어보려고 합니다. 현재 산사원 앞산에 4,000여 평의 땅을 사들였습니다. 여기에 증류 소주를 300여 개를 묻을 예정입니다. 지금 공장에서 소주를 담을 옹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허 = 좋은 생각입니다. 저장술의 이름은 생각하셨습니까.
배 = ‘세월주’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세월’에 담긴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세월주’에 시간을 담아 다음 세대에 유산으로 물려줄 생각입니다. 그 중 일부는 30년 후에 오픈할 생각입니다. 그때까지 제가 살아있을까요? (웃음)
허 = 전통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배 =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전통술 생산, 문화 확대, 연구 인력 확보 등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전통술의 종류를 늘릴 계획입니다. 일본은 소주 종류만 1,000종이 넘고 청주는 무려 4,000종에 달합니다. 독일의 경우엔 맥주 종류만 1,300종이나 됩니다. 세계 주류와 경쟁할 만한 다양한 전통술이 필요합니다.
또 전통술 문화를 확대하는 일환으로 전국 곳곳에 전통술을 맛볼 수 있는 주점을 만들 계획입니다. 주점에선 생주를 팔 계획입니다. 지금 전국 각지로 배송되는 술은 오래 보존하기 위해 가열 · 살균 · 처리를 거칩니다. 이 과정을 생략해 가장 맛있게 숙성된 상태에서 냉장으로 유통되는 술이 생주입니다. 보존기간은 짧지만 그만큼 본연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준비하는 게 전통술 연구 인력의 확보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오랜 꿈인 대학에 주류 전문학과를 만드는 일입니다.
허 = 저는 국내에 좋은 약재를 생산해 유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약재 브랜드 ‘옴니허브’를 만들었죠. 질 좋은 토양에서 친환경 농법 재배를 통해 약재를 관리하고 전국 2,200여 개 한의원과 한방 관련 기관에 한약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약술뿐만 아니라 한방차도 보급할 계획입니다. 저 역시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 한방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배 =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제 꿈은 아시아 최고의 술 문화 기업을 만드는 겁니다. 세계 곳곳에 양조장을 세우고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전통주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때가 되면 배를 타고 각국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술 문화를 홍보할 겁니다.
한의사 허담 선생은 1960년 대구 출생으로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했다. 대구에서 태을양생한의원을 운영한다. 좋은 약재를 구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산수유주(山茱萸酒)
노화를 예방하고, 피부의 젊음을 유지하는 데 유용하다.
키가 작은 아이에겐 성장 발육에 도움을 준다.
최근엔 산수유주가 정력을 강화시키는 데 효험이 있다는 연구 보도도 나왔다.
원료 : 산수유 100g · 소주 1,000ml
보비화위주(補脾胃和酒)
소화기 장애가 잦은 사람이 효과를 볼 수 있는 한방주다.
소화기뿐만 아니라 신장을 보호해 몸의 균형을 맞춰 준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되고, 쉽게 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배가 차면서 설사가 잦은 사람에겐 약으로 쓴다.
원료 : 인삼 · 화산약 각각 40g, 백출 50g, 산수유 30g, 생강 20g, 오미자 · 산자 각 30g, 소주 2,500ml
오가피주(五加皮酒)
뼈와 근육이 약해지기 쉬운 중년 이후에 마시면 좋다.
오래 두고 먹으면 몸을 가볍게 하고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준다.
또 뇌의 피로를 풀어주고, 눈과 귀를 밝게 한다.
체내 유해산소를 제거함은 물론 각종 화학물질의 해독 작용도 한다.
원료 : 오가피 100g, 당귀 50g, 우슬 60g, 소주 1,000ml
양생주(瀁生酒)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해지거나 팔 · 다리 힘이 빠지는 노인들이 한두 잔씩 마시면 좋다.
또 병석에 누워 있던 이가 회복 단계에 있을 때 기력을 찾는 데도 도움을 준다.
눈을 밝게 하고 혈액순환이 원활하도록 돕는다.
원료 : 당귀신30g, 감국화 30g, 용안육 240g, 구기자 120g, 소주 250ml
팔진주(八珍酒)
체질이 원래 약하거나 골골한 사람, 소화가 잘 안되며 식사량이 적고 변이 무른 사람에게 유용하다.
허리와 무릎이 시큰거리는 사람은 오래 복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병이 없는 사람에겐 체질 강화에 도움이 된다.
원료 : 당귀 90g, 천궁30g, 백작 60g, 생지황 60g, 인삼 30g, 초백출 60g, 백복령 60g, 자감초 40g, 오가피 150g, 대추 120g, 호도 120g, 소주 5,000ml